우리는 보통 자신만을 생각하는 사람보다는, 조직이나 사회를 위해 헌신하는 사람이야말로 큰 업적을 이룰 수 있다고 흔히 생각한다. 물론 여기서 '자기만'이라는 부분은 배타적인 뉘앙스가 있지만, 자신을 초월한 더 큰 것을 위한다는 개념이 무언가 더 고결하다는 것은 누구나 생각하는 통념이다.
최근 드는 생각중 하나는 '내 자신에게 진실하라'다. 뻔한 말이지만 곱씹을수록 맞는 말이다. 첫 만남에서부터 종교나 정치에 대한 이야기를 하거나, 회사에서도 어떤 조직적인 이익을 위해 조직 논리를 앞세우는 사람들을 자주 볼 수 있다. 물론 말과 겉은 번지르르 하다. 조직을 위해서, 내 믿음을 위해 쟁투하는 투사로 포장된다. 나 자신에게 집중하는 사람은 이런 고결한 투사 앞에서 평가절하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런 부류야 말로 내 자신은 뒤로 숨은 채, 조직과 믿음을 앞에 둔다. 내 자신을 오롯이 알고 사랑하는 사람은 나 자신을 전면에 세울 수 있다. 이념 덩어리에 빠진 사람은 답변하기 쉽고, 나 자신을 숙고하는 사람은 질문하기 마련이다. 내 자신에게 집중하는 사람은 주변을 탐색하고 자신이 발견한 문제를 숙고한다. 대답은 세상을 멈추게 하고, 질문은 돌아가게 한다. 어떤 사람이 결론적으로 조직에 더 이로울까.
노자가 말했다.
"자기를 천하만큼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천하를 맡길수 있다."
노자의 사유는 결국 자신에 대한 사유로 귀결되고, 공자는 계속해서 너를 학습시키고 단련시켜 바람직한 우리 가운데 내가 되라고 한다. 나 자신이길 포기하고 우리라는 이념에 빠지면 손쉽데 부패되고 경색되기 십상이다. 내 자신을 먼저 관리하고 통제할 수 있어야 독립된 개체가 모인 건강한 우리가 되는 것이다.
최근에 내 신변에 많은 일들이 있었다. 포스팅하기엔 어두운 일들이라 자세히 기술하긴 그렇지만 내 자신에 대해서 오롯이 집중해야 내 주변도 비로소 행복해지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한다. 나 자신도 항상 가족을, 조직을 위해 나 하나정도는 분골쇄신해야지 라는 마인드를 미덕으로 여기고 살아왔던것 같다. 그 과정에서 중간중간 삐져나오는 자기 연민은 오히려 내 주변을 더욱 어둡게 해치지 않았나 반문하게된다.
국적을 쇼핑하는 세상
나아가, 아들을 키우는 아빠로써 이런 생각도 하게 되었다. 우리는 어릴때부터 배우는 교육을 통해, 애국하고 지역사회 발전에 이바지 하는 것을 미덕으로 배우며 자란다. 그래서 우리가 속한 세상(혹은 정부)에서 제안하는 옵션안에 나를 가두고 살아간다. 가령 "군대를 가거나 감옥을 가." 라던지. 물론 나는 군대를 다녀왔다. 하지만 아들이 살아갈 미래에는, 자신의 국적도 스스로 정하거나 이직하듯 옮기는 세상이 더 보편화되지 않을까.
실제로 현재도 노동력이나 인구가 부족한 선진국에서는 다양한 혜택을 앞세워 이민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국가에서 애국심으로 포장된 역사와 민족주의를 가르키는 것도 이런 경쟁에 뛰어들기 싫어서이다. 만약에 내 아들이, 자신 스스로 어디서든 필요한 역량을 갖추고, 테두리를 벗어나길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이런 주체적인 결정을 통해 삶을 더 풍성하게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건, 앞서 말했든 어떤 조직논리에 빠지지 않고 나 자신에게 집중해서 스스로 우뚝설 수 있는 능력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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