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40을 바라봄에도 아직 부모님 곁에서 객살이를 하고있다. 생면부지인 누군가의 손에 아이를 맡기기 불안하다는 것. 고물가 시대에 시터비를 조금 아끼자는 것. 다양한 이유로 나의 불효는 매일 같이 정당화되고 합리화된다. 40살이 되면 어른이 될 줄 알았는데, 어른은 가파르 산길에 보일락 말락하는 정상만큼이나 요원하다. 자식들 키우느라, 맨손으로 시작한 삶을 일궈내느라 한 평생 청춘없이 땀흘린 우리 엄마 아빠는 머리를 긁적이며 기어들어온 아들 덕(?)에 난데없는 육아를 하고 계신다. 여유로울 것이라 기대했던 노후는 뒷방 구석 한 켠으로 접어둔 채..
덕분에 내 주제엔 과분한 동네에서 어쩔 수 없이 아들을 키우고있다. 우리 가족에게 주어진 일상은, 평소엔 마치 내 것인 마냥 (실제로 내가 오래 살았던 곳이기도 하고) 지극히 잔잔하지만, 학부모가 되어 다시 돌아온 우리 동네는 마치 나 같은 건 아무래도 좋다는 듯이 매우 적대적인 순간들이 있다. 아들 유치원 친구들 모두가 국제 학교, 적어도 사립을 보낼 계획이라고 할 때. 프렙이라는 사교육을 위한 사교육을 위한 사교육을 할 때. 등급별로 잔디구장을 쓸 수 있는 시간이 제한되는 축구 수업 이야기를 들을때. 맞벌이로는 꿈도 못꾸는 대치동, 삼호가든 사거리로의 라이딩을 벌써부터 하는 아들 친구네 엄마를 볼 때. 그리고 그런걸 직접 목도하며 부러움도 아닌 허탈감을 느끼는 와이프를 옆에서 지켜볼 때. 가장으로써 할 수 있는 말은 빈 쌀통 만큼이나 공허하다. 투자를 할 때는 내게 큰 힘을 주던 자본주의의 생리가, 그 반대편에 서 있는 부모로 입장이 탈바꿈되니 한껏 냉엄하다.
얼마전 추적 60분에서 '7세고시' 라는 주제를 다뤘다. 응당 미운7살로 대변되던 유년기 올타임 하이 말썽꾸러기 시기인 아이들의 사교육에 대한 이야기였다. 아이들은 무거운 얼굴로, 그 중 몇은 울며 대치동 학원가를 전전하고 있었다. 대치동 뿐만 아니라 여건만 된다면 대한민국의 모든 부모가 '의대'라는 골을 향한 경주 트랙의 위에서 내 말에게 베팅을 하는 것 같았다. 그들이 맞다 틀리다를 말할 수는 없지만, 아이들의 얼굴에는 거의 50대 퇴역군인 같은 고단함이 드리워져 있었다. 물론 나도 지금은 '아 전문직이 답이었다' 라는 생각을 닭장같은 회사 사무실에서 종종 하지만.
자식을 키우며 누구나 '내 아들이 행복했으면' 이라는 생각은 부모로써 보편적이고 당연하다. 7세 고시 과정을 거쳐서 인생 초반엔 조금 고단해도 내 자식이 좋은 직업을 가지고 남부럽지 않게 살 수 있다면 그 또한 부모로써 큰 행복일테다. 공부를 잘한다는 것은 많은 기회와 선택지를 가질 수 있고 사회에서 어느정도 하방 안전망으로 작용한다. 자식에게 많은 기회를 제공한다는 면에서 맞는 방향이라 생각한다. 그 과정이 극단적일 수는 있어도 말이다.
7살이 되었지만 고시과정을 거치지 않는(사실 여건상 못하는) 해맑은 아들을 보면 나와 와이프는 이런 저런 고민을 이야기한다. 남들처럼 안해도 될까? 어떡하지? 근데 할수도 없는데.. 처음 해보는 엄마, 아빠라는 역할에 그 누구도 정답을 줄 수 없는 상황에 우리 부부의 고민은 항상 밤하늘 담배 연기처럼 흩뿌려지다 이내 사라진다. 대치동 7세고시 그들은 부모도 자식도 행복하지 않을거라는 못난 자기위로적 합리화와 함께.
우리 세대의 성공 방정식 대부분이 우리 자식세대에서 그대로 통할 것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우리 부모 세대와 우리 세대의 차이보다, 우리와 우리 다음 세대의 차이가 더 클 것이다. 나이브한 생각일 수 있지만, 어떤 분야건 그 분야를 좋아하고 열정적으로 몰입하면 얼마든지 다양한 방식으로 성공할 수 있는 시대가 될 것이다. 물론 지금도 그렇게 되었고. 아들이 뭐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은 아직은 딱히 없다. 그저 확실한 건, 아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찾아 몰입하고 그 과정에서 행복하다면 더할나위 없겠다. 그래서 아들이 진심으로 좋아하고 잘 할 수 있는 것을 찾아주고 싶다. (물론 그게 공부라면..ㅎㅎ) 문제는, 나도 와이프도 그 '좋아하는 일'을 찾는 법을 모른다. 얼마전 타일러가 청년들 대상 강의를 할때도 한국이 걱정되는 것 중 하나가, 청년들이 '좋아하는 일을 찾는 법'을 모른다는 질문이 대부분이었다고 한다.
최근에 아들은 미드저니를 활용해서 그림을 그리는 것에 빠져있다. 미드저니는 이미지 생성 AI툴인데, 내가 원하는 그림의 문장, 단어와 몇가지의 프롬프트를 활용하면 정말 다양하고 품질 높은 이미지들이 나온다. 기계, 로봇, 괴물, 공룡에 빠져있는 아들은 그 모든것을 합쳤다 분해했다 하면서 이 AI툴을 즐기고 있다. 특히 본인이 원하는 단어들을 입력하고 15% ,, 33% ,, 56% 올라가는 로딩바를 볼때면 그 눈에서 순도 100%의 행복함이 느껴진다. 평소엔 안하던 뽀뽀세례까지 할정도로 즐거워 한다.
이미지 AI를 만들때 영어로 입력하는 걸 모르면 챗GPT를 통해 영어나 프롬프트에 대해서 물어본다. 그러면 한층 더 수준 높은 결과물을 얻을 수 있다. 이미지 AI를 지겨워 할 때 쯤엔, 이미지로 만든 결과물을 영상으로 만들어주는 AI를 해봐야겠다. 그 다음엔 챗GPT 고급형으로 AI와 영어회화를 할 수 있겠지..
힘이 닿는 한 다양하고 새로운 것들을 맛보게 해주고 아들이 모래밭에서 진주를 찾았으면 한다. 본인이 진정 원하는 일에 평생 몰입하며 행복을 느끼고 살 수 있었으면 한다. 설령 찾지 못한다해도 직접 본인이 좋아하는 것을 찾을 수 있는 탐험가가 되었으면 한다. 그리고 종국엔 엄마랑 아빠같은 부모를 만나서 운이 참 좋았다고 생각할 수 있는 날이 왔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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