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꽃
뽑으려 하니 모두
잡초였지만
품으려 하니 모두
꽃이였다.
11월 말, 정기 인사명령과 조직개편이 있었다. 필자가 있는 곳은 사기업으로, 당연하게도 경쟁을 해야되는 구조다. 따라서 연말이면 희망퇴직으로 갑작스레 자리를 비우시는 선배 사우들을 매년 마주하게 된다. 저연차일때는 누가 승진하고 누가 팀이 바뀌고 어수선하고 말 한번 섞어 본 적 없는 부장님들이 집에 가시는 상황이 조금은 생경했지만, 이제는 어느덧 10년차가 지나며 어수선한 인사명령과 희망퇴직을 보는것이 매년 연말 연례행사처럼 조금은 익숙하기도 하다.
인사명령은 조직에 던지는 메세지라고 한다. 어떤 조직이 생기고 어떤 사람들을 중용하고, 어떤 곳에 힘을 주는지 보면서 조직 전반적으로 '내년에는 우리회사가 어떤 방향으로 갈꺼에요' 라고 메세지를 던지는 것이다. 중용되는 선배들에게는 '영전을 축하합니다' 라고 축하 인사를 드리기도 하지만, 조직에서는 희망퇴직이든, 타부서 발령이든 다양한 형태로 도태되는 사람들도 있기 마련이다.
직장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는 '쓰임'이다. 내가 조직에서 어떤 '쓰임'이 있는지가 내가 조직에 오래 살아 남을수 있는지 결정한다. 가급적이면 대체불가능하면 좋겠지만, 시스템 안에서 대체 불가한 요인은 리스키한 변수 일 수 밖에 없기 때문에 회사에게 직원은 언제든 대체 가능한 것이 안전할 수 있다. 따라서 연차가 쌓일수록 끊임없이 나의 '쓰임'에 대해 증명하고 증명해야 한다. 쓰임은 업무적일 수도 있고, 약간은 정치적인 부분일수도 있다.
10년차가 되니, 나랑 비슷한 연차 중에도, 몸담고 있던 조직이나 상사에게 내쳐지고, 급작스레 다른 조직으로 가게되는 경우를 보게 된다. 필자가 있는 기업은 크지 않은 규모의 회사기 때문에 대부분의 직원들이 서로를 알고 있고 회사내의 다양한 친목 네트워크도 있는 말 그대로 '가족'같은 면이 있다. 하지만 인사결정권자와 FIT하지 않은 이유로 내 의지와 상관없이 하루 아침에 다른팀으로 출근해야 하는 일이 생긴다. 누구나 말하지 않아도 누구나 알고 있는 주홍글씨 같은 '한번 나온 사람' 이 붙고 기세가 한번 꺾이게 되면 보통 회생의 기회 없이 꾸준한 하향곡선을 타게 된다. 야생에서 한 번의 실수로 생긴 상처는 결국 연약한 가젤의 생명을 뺏어가는 것과 마찬가지다. 연차가 쌓일수록 점점 더 회사라는 것이 무서워지는 것 같다. 회사는 감정도 없고 효율만을 추구한다.
그러던 와중에 '풀꽃'이라는 시를 팀장님의 책상에 포스트잇으로 봤다. 왠지 모르게 가슴에 울림이 있었는데 마침 인사명령과 희망퇴직이 있던 시즌이라 더 그랬다. 중간 관리자로써 나도 누군가의 '쓰임'에 대해 고민하고, 후배 사원들의 '쓰임'에 대한 고민을 하던 도중이라 더욱 와 닿았다. 내가 과연 누군가를 뽑고, 품을 수 있는 사람인가에 대한 생각이 들긴하지만, 어떤 후배 사원이든 품고 같이 성장하려는 것도 관리자로써 매우 중요한 역량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싫다고만 하면 안좋은 것만 보이고, 같이 가려고 하면 좋은것도 보이기 마련이다. 나도 누군가에겐 잡초이거나 꽃이었을 수도 있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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