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박2일로 친구들과 영남알프스 1코스를 역으로 종주를 했다. 영축산을 들머리로 신불산과 신불재, 그리고 간월재를 통해 내려오는 코스로 약 10~15km 정도 되었던 것 같다. 하룻밤을 신불재에서 보내고 이튿날 아침 일찍 신불산을 오르고 간월재로 내려왔다.
나이가 들고 부족한 운동량 탓에 10kg이 넘는 박배낭을 매고 오르는 업힐이 쉽지 않았다. 산을 정말 오랜만에 올랐는데 예전 20대 때의 기억에서 업데이트가 안된 부작용덕에 체력의 부족함을 많이 느꼈다. 그래도 한 걸음 한 걸음이 모여 어느덧 정상에 도달해 지나온 길을 뒤돌아 볼 때의 행복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인생에서도 왕도 없이 결국 꾸준히 모은 한 걸음 한 걸음이 내가 원하는 곳으로 나를 데려다주지 않을까.
고갈된 체력 때문에 산행 내내 좋은 경관들을 차마 눈에 못담고 땅만 보고 걸었던 것 같다. 순간 순간 고개를 들면 굽이치는 영남 알프스의 산맥과 그림같은 구름이 눈안에 한 껏 들어왔지만, 마음껏 즐기지 못했다. 좀 더 체력이 좋았다면, 준비가 되었다면 산행 중에 보이는 장면 하나 하나, 눈 안에 흠뻑 담을 수 있었을 것 같다.
문득 느꼈던 점은, 버거웠던 이번 산행이 요즘 내 일상과도 비슷한 것 같다. 고개만 들면 느낄 수 있는 아름다운 것들은 보지 못한채 고된 하루하루에 버거워하며 살아내고 있는것이 아닌지.. 하지만 그 순간만큼은 너무 바쁘고 힘들어 차마 마냥 즐길 수 없는것도 사실이다. 산에서는 준비된 체력이 산행 중간중간 멋진 자연 풍광을 눈에 담을 수 있는 여유를 선물해주지만, 우리 인생에선 어떤 것이 있어야 여유롭게 아름다운 것들을 둘러볼 수 있을까?
산행 6시간 만에 박지에 도착했다. 일기예보에서도 이미 봤지만 초속 10m 정도의 돌풍때문에 텐트를 피칭하기 쉽지 않았다. 오랜만에 팩다운을 하고 가이라인으로 텐트를 고정시켰다. 그럼에도 협곡에 위치한 박지엔 밤새 강한 바람이 쉴새없이 몰아쳐서 쉽게 잠을 청하기 힘들었다.
국내에 있는 모든 산에서는 화기를 이용한 취사행위가 불법이다. 캠핑을 가거나 야지를 가면 보통 스토브로 화기 가열식 취식을 하곤 했었는데 이번엔 비화식으로 준비했다. 군대에서 먹던 전투식량처럼 줄을 땡기거나 차가운 물을 부으면 가열이 되는 방식이다. 기대했던 것보다 좋은 성능 덕분에 해발 천미터 산에서 따듯한 음식들을 먹고 몸을 따듯하게 할 수 있었다. 유튜브에서 봤을때는 별로일거라 생각했는데, 대만족이었다. 역시 무엇이든 경험을 해봐야 한다.
몸을 혹사시키다 보면 일상이 참 소중해진다. 줄어드는 물병에 물을 보며 한모금 한모금에 조바심이나고, 작은 초코바 한 조각이 산행에 긴요한 에너지원이 된다. 땀에 젖어 눅눅하고 지칠대로 지친 몸을 작은 텐트안에 뉘이면, 포근하고 따듯한 집 침대와 가족이 그립다.
익숙함에 취해 소중함을 잊지 말자는 흔한 말은 연애뿐만 아니라 삶의 모든 순간을 관통하는 메세지다. 2일에 걸친 이번 산행은 익숙하다 못해 지루하고 뻔한 일상이 사실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깨닫게 해주었다.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다소 늦은 새해 계획들 (0) | 2023.01.15 |
---|---|
뒤처짐에 대하여 (0) | 2022.12.11 |
꾸준함에 대해서 (0) | 2022.10.24 |
식판 인생 (0) | 2022.10.05 |
요즘 드는 생각 횡설수설 (자연, 육아, 시스템) (0) | 2022.10.02 |
댓글